언제부턴가 정치는 하나의 상품(프로덕트. product)처럼 다루어진다. 각종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과 정당들의 주요한 활동들은 홈쇼핑의 판매 이벤트를 방불케 한다. 홈쇼핑의 주문폭발이나 매진행렬은 유튜브 채널의 댓글창이나 슈퍼챗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각종 쇼호스트들과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의 말투와 행동은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정치는 각 정당과 세력들이 유권자들에게 최대한 어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공공적 효과로 바꾸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유권자는 소비자, 정당들은 상품의 제조기업처럼 비유하는 것이 꽤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엘버트 허시먼의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나 앤서니 다운스의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등에 따르면 시장에서 기업들이 상품을 판매하고 고객들의 충성도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전략과 정당들의 행위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선거시장에서 유권자들에게 매력적인 정책과 비젼을 판매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 정치는 정당의 선거승리를 위해 유권자 시장에서 각자의 포지셔닝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비젼과 공약이라는 상품으로 유권자를 매혹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들이 이렇게 유권자들을 매혹시키기 위해 경쟁하는 근본적 이유에도 그리고 시민들 스스로가 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결집하고 움직이는 근간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거나 개선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여성들이 투표권을 쟁취하고 정당에 참여하기도 하며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폭력에 저항하는 정치를 하는 이유는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길고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인류가 기후위기라는 공동체의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기후정치> 역시 최근의 유권자 시장에서 제법 매력적인 신상품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과 더 나은 환경과 지구를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가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경향성을 보면 이것을 공동체의 생존과 평등을 위한 <프로젝트>로 이해하기 보다는 여전히 유권자 집단에게 어필하기 위한 상품목록의 신상품정도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정치의 본질이 상품으로서의 프로덕트가 아니라 변화를 향한 프로젝트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떤 지향성을 가진 과정으로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정이란 단계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기획과 실행까지 더 넓고 다양한 변수들의 역학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 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작금의 정치는 시민들과 공동체에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프로젝트 보다는 지나치게 ‘선거승리’라는 ‘완판’을 향한 시장의 특수한 트렌드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성이 큰 것 같다. 정치와 운동은 시민들의 경향적인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그것 역시 사회의 변화와 개선의 효율성과 적합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단순히 상대를 패배시키기 위해서라거나 여론시장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본질적 목표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최근에 나타나는 이런 문제점을 정책이라는 영역에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책과 대안은 긴 프로젝트 안에서 해당 시기에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긴 안목에서 새로운 정치적 동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획기적인 정책상품이 출현해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거나 정책대안 그 자체가 정치나 운동의 목표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이런 경향성이 심화되면 한정된 영역에서 제한적인 개선조치를 가져오는 정책대안이 마치 그 자체로 달성(마치 판매해야 하는) 목표가 되어 이를 위해 각종 쇼핑프로그램에서 ‘필요’를 과장되게 홍보하듯이 ‘위기’를 과장하거나 왜곡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 그 자체가 정치와 운동의 본질이 아니라 위기를 해소하는 프로젝트가 정치와 운동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는 ‘프로젝트’로서의 정치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프로젝트의 단계마다 구체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최종적으로 파국을 ‘예언’하는 것이 아닌 문제의 개선 가능성과 결과를 ‘예상’하게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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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정치는 하나의 상품(프로덕트. product)처럼 다루어진다. 각종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과 정당들의 주요한 활동들은 홈쇼핑의 판매 이벤트를 방불케 한다. 홈쇼핑의 주문폭발이나 매진행렬은 유튜브 채널의 댓글창이나 슈퍼챗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각종 쇼호스트들과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의 말투와 행동은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정치는 각 정당과 세력들이 유권자들에게 최대한 어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공공적 효과로 바꾸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유권자는 소비자, 정당들은 상품의 제조기업처럼 비유하는 것이 꽤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엘버트 허시먼의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나 앤서니 다운스의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등에 따르면 시장에서 기업들이 상품을 판매하고 고객들의 충성도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전략과 정당들의 행위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선거시장에서 유권자들에게 매력적인 정책과 비젼을 판매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 정치는 정당의 선거승리를 위해 유권자 시장에서 각자의 포지셔닝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비젼과 공약이라는 상품으로 유권자를 매혹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들이 이렇게 유권자들을 매혹시키기 위해 경쟁하는 근본적 이유에도 그리고 시민들 스스로가 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결집하고 움직이는 근간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동체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거나 개선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여성들이 투표권을 쟁취하고 정당에 참여하기도 하며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폭력에 저항하는 정치를 하는 이유는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길고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인류가 기후위기라는 공동체의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면 <기후정치> 역시 최근의 유권자 시장에서 제법 매력적인 신상품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과 더 나은 환경과 지구를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가 <기후위기>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경향성을 보면 이것을 공동체의 생존과 평등을 위한 <프로젝트>로 이해하기 보다는 여전히 유권자 집단에게 어필하기 위한 상품목록의 신상품정도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정치의 본질이 상품으로서의 프로덕트가 아니라 변화를 향한 프로젝트라고 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떤 지향성을 가진 과정으로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정이란 단계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기획과 실행까지 더 넓고 다양한 변수들의 역학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 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작금의 정치는 시민들과 공동체에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프로젝트 보다는 지나치게 ‘선거승리’라는 ‘완판’을 향한 시장의 특수한 트렌드로만 이해하려는 경향성이 큰 것 같다. 정치와 운동은 시민들의 경향적인 변화에 가장 민감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그것 역시 사회의 변화와 개선의 효율성과 적합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단순히 상대를 패배시키기 위해서라거나 여론시장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본질적 목표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최근에 나타나는 이런 문제점을 정책이라는 영역에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책과 대안은 긴 프로젝트 안에서 해당 시기에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긴 안목에서 새로운 정치적 동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획기적인 정책상품이 출현해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거나 정책대안 그 자체가 정치나 운동의 목표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이런 경향성이 심화되면 한정된 영역에서 제한적인 개선조치를 가져오는 정책대안이 마치 그 자체로 달성(마치 판매해야 하는) 목표가 되어 이를 위해 각종 쇼핑프로그램에서 ‘필요’를 과장되게 홍보하듯이 ‘위기’를 과장하거나 왜곡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위기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 그 자체가 정치와 운동의 본질이 아니라 위기를 해소하는 프로젝트가 정치와 운동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는 ‘프로젝트’로서의 정치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프로젝트의 단계마다 구체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최종적으로 파국을 ‘예언’하는 것이 아닌 문제의 개선 가능성과 결과를 ‘예상’하게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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