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회고록 <자유>⑦ 무엇이 유로존을 지키는 길인가? - 유로존 재정 위기

20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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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무엇이 유로존을 지키는 길인가? - 유로존 재정 위기

 

독일이 유럽경제에 대해 가진 청사진은 단순하다. 유럽연합은 가능한 독일과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이 유로존에 강요한 것이라기보다 다른 나라들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독일은 다른 유로존 국가를 압도할 만큼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규모가 크다. 유럽경제에서 독일 비중은 전체의 약 25%정도이다. 독일의 특별한 점은 규모 이전에 그 성격에 있다. 독일은 시장의 자율성에 대해서는 영미식을 공유하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는 프랑스 모델과 유사하다. 또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 지향에 대해서는 북유럽과 공통점을 갖는다. 유럽의 교집합이 독일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여러 가지 조건을 볼 때, 독일이 유로존 경제의 조직자이자 관리자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유럽은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하나의 경제 및 하나의 통화로 전환하게 된다. 당시 단일통화 회원국들은 안정적인 통화통합을 위한 거시적 경제지표를 설정한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 단일통화를 위해 당시 달러 다음으로 가장 강력한 통화였던 도이치 마르크(Deutsch Mark)를 포기했던 독일의 요구조건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핵심적인 내용은 적자는 GDP의 3% 미만, 국가부채는 GDP의 60%미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낮은 인플레이션, 재정의 엄격한 관리는 독일 경제의 상징이었다. 유로존은 바로 이것을 회원국이 수용하기로 결정함으로서 창설될 수 있었다.

 

그리스는 재정위기 당시(2009년) 적자는 GDP의 12.7%, 국가부채는 112.6%였다. 통화 동맹이 합의한 기준을 한참 넘어선 것이다. 이로 인한 신용등급하락과 자금 경색으로 그리스는 사실상 국가부도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칼은 물론, 프랑스마저 위태롭게 했다. 그리스의 위기는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들불처럼 번졌다.1)

1) 한국은행, 《해외경제정보》 2009-74호 2009. 12. 23.

 

회고록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리스 위기는 경제적 위기 이전에 정치적 위기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리스 재정 위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지만, 당시 총리였던 파판드레우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2009년 총리로 취임한 파판드레우는 이전 정부(신민주주의당 정부)가 재정적자를 조작해 EU에 보고했고, 실제로는 4배이상이라고 폭로했다. 파판드레우의 이 폭로로 그러지 않아도 금융위기 여파로 잔뜩 얼어붙어 있던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고, 그리스는 자본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순식간에 잃었다.2)

2) “Greece’s debt odyssey”(그리스의 부채 오딧세이) 《The Economist》, 2019년 10월.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19/10/03/greeces-debt-odyssey



정부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겠지만, 이전 정부가 남겨 둔 케비넷을 뒤져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초래될 결과에 대한 고려없이 폭로하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파판드레우에게는 유럽공동체의 일원인 그리스의 통치자로서 가져야할 절제와 균형감이 부족했다고 생각된다. 메르켈이 파판드레우를 만났을 때, 그는 심각하다는 말만 했을 뿐, 대안도 없었고 구체적인 지원요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메르켈은 파판드레우 총리의 이런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3) 

3)<자유>, p. 443-446.

 

2010년 4월 23일 그리스 위기는 정점에 달해 국가부도 직전의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당시 파판드레우 총리는 지중해의 휴양지에 있었다고 한다. 파판드레우는 뒤늦게 유로그룹과 국제통화기금에 원조요청을 하며 자신있다는 듯 “우리는 이카타로 가는 길을 알고 있고, 항로도 이미 정해 놓았습니다”라는 멋진 정치적 수사를 남겼다. 메르켈은 그가 “자국 상황을 트로이 전쟁 이후 10년 동안 표류하면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고향 이타카섬에 거지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에 비유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메르켈의 말과 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조롱이다. 그리스 통치자의 무책임함에 대한 메르켈의 당혹과 분노를 보여주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사례는 없다.4)

4)<자유>, pp. 447-448. 


당시 메르켈은 유로존의 많은 나라로부터 대규모의 구제금융을 실행하라는 상당한 압력을 받아야 했다. 재정위기에 직면한 유로존 나라의 정상뿐만 아니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까지 메르켈 총리를 강하게 압박했다. 메르켈은 “신속하게 돕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유럽인은 아니”라며 차갑게 대처했다. 구제금융을 금지한 리스본 조약과 독일의 국내법 등을 존중해야 한다며 합당한 절차와 전제없이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독일의 주저함 때문에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며 반발했다. 물론 메르켈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브뤼셀에서 남유럽 정상들과 밤을 새워 협상을 벌였고, 독일의 국익을 소홀히 한다는 기민당과 연정 내부(당시는 자민당)의 질책과 압박에도 대응해야 했다. 메르켈이 지향하는 것은 ‘시장 추종적 민주주의’라는 사민당의 날선 비난과 조롱도 감수해야 했다. 

 

유로존 위기는 유로그룹이 수차례의 지원과 구제금융을 쏟아붓고 난 2015년이 지나서야 어느 정도 수습되기 시작했다. 회고록은 유로존 위기를 둘러싼 비판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새로운 내용은 없다. 리스본 조약과 유럽연합의 원칙, 연합을 구성하는 각 나라가 가져야 하는 책임성에 대한 강조, 구제책을 위해 매 단계마다 거쳐야 했던 연방헌법재판소 제소라는 허들, 당내와 국내 보수파들의 강한 반발 등이 나열된다. 그러나 취약한 나라의 가난한 유럽인들이 받은 극심한 고통을 생각할 때, 메르켈의 해명은 위안이 되지 못한다. 

 

경제는 숫자나 법규 이전의 문제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이른바 삼두마차(die Troika)가 주도한 구조조정은 국가부채 위기에 빠진 나라들에게 매우 가혹했다. ‘삼두마차’는 구제금융 지원을 댓가로 예산적자를 GDP의 4%에 맞출 것을 강요했다. 과격한 긴축은 그리스의 경제적 약자에게 큰 타격을 가했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또 생존의 기반을 상실한 일부는 그리스를 떠나 경제적 난민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유럽 전역을 전전해야 했다. 21세기의 경제적 디아스포라였다. 당시 그리스는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겪어야 했다. 맷 데이먼 주연《본》(Bourne) 시리즈의 2016년 작 <제이슨 본>에 등장하는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 시위 신(scene)은 실제로 그리스에서 격렬하게 전개된 반 구조조정 시위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유로존 위기에 대한 메르켈의 냉혹한 대처는 그녀가 총리로 있을 때는 물론이고, 퇴임한 이후에도 메르켈을 비판하는 가장 대표적인 소재 가운데 하나 였다. 따뜻한 무띠(Mutti) 메르켈의 어두운면에 종종 그려지는 보수적인 수전노의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이 비판은 좌와 우 양쪽으로부터 서로 다른 초점을 두고 제기되었다. 

 

메르켈에 대한 비판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가혹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메르켈은 유럽연대의 정신을 보여주지 못했고, 유로존 붕괴는 막았지만, 결과적으로 강한 유럽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잃었다. 또한 유럽 내에 통합정신보다는 자국 중심적 태도를 심화시켜, 유럽의 원심력을 강화했다. 다른 한편으론 독일 시민의 이익과 주권을 침해했다는 우파5)의 비난도 있었다. 이처럼 유로존 위기 대응에 대한 실망은 매우 광범위해서, 그녀의 전기 작가인 랄프 볼만(Ralph Bollmann)조차 “메르켈은 본질적으로 유럽주의자가 아니었다”는 비판적인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6)

5) 독일의 극우정당으로 알려진 AfD(Alternative für Deutschland, 독일을 위한 대안)은 유로존 위기 과정에서 유럽 회의주의(Euroskepticism)를 동원해 만들어진 정당이다.

6)“A First Look at Angela Merkel`s Legacy: The Era of Missed Opportunities” 《SPIEGEL》 2021. 9. 6.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a-first-look-at-angela-merkel-s-legacy-the-era-of-missed-opportunities-a-3cdef2e3-e451-4e6b-91b5-c89f97acb9df

 

“내가 뜻을 꺾고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에 강력한 긴축 조치와 경제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중략)… 개혁으로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은 주로 저소득층이었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만약 위기에 처한 국가들에 긴축과 경쟁력 향상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내 당과 연정에서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건 내 신념과도 맞지 않는다. 내 신념은 확고했다. 우리는 공통 통화를 원했다. …(중략)… 그렇다면 함께 정한 규칙을 모두가 준수할 거라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했다. 내가 주안점을 뒀던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자유> p. 460.

 

통합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면서 더 나은 타협을 만들고 협력하는 것이라는 메르켈의 생각은 옳다. 또 재정위기를 불러온 개별 국가가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데 독일이 그 부담을 상당 부분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스 위기 해결을 위해 강경한 태도를 취한 메르켈은 비록 남유럽 국가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든 유로존과 유럽경제의 안정성을 지켰다는 평가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위기를 만든 당사자가 결코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과 피해가 너무 컸다. 고통을 절약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었을까. 생존의 절벽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당장의 책임, 규율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또한 책임을 따진다면,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한 삼두마차와 그리스 등의 유로존 가입을 위해 분식회계를 컨설팅한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국제 투기꾼들의 책임도 못지않게 크다. 난민문제에서 보여주었던 “Wir schaffen das”(우리는 다룰 수 있다)같은 적극성이 왜 여기서는 보여지지 않았는지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