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자유”라고 쓰고 “민주주의”라고 읽는다.

회고록의 제목인 ‘자유’ 곧, 독일어 ‘Freiheit’는 어원학적으로 고대 인도유럽어 ‘pri’(프리)에서 온 말이다. pri(프리)는 사랑하다는 의미로 ‘자유’(Freiheit)와 마찬가지로 ‘친구’(Freund)와 ‘평화’(Frieden)와도 연결되어 있다. 고대 인도유럽어 pri가 자유의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은 인상적인데, pri는 사랑하다는 뜻에서 점차 ‘가족, 친구, 부족 등 사랑하는 사람들 속해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으로 의미가 발전했다고 한다.1) 즉, 자유는 공동체를 전제로 형성된 개념이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안전과 안정, 그리고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700페이지가 넘는 회고록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자유에는 민주주의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없이는 자유도 법치도 인권도 없다. 자유 속에 살고 싶다면 안으로든 밖으로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로부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혼자만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자유란 우리 모두의 것이다.”(자유 p.739.)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 정의, 연대 등을 중요한 가치를 담는 그릇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통치하는 실체적 원리이자 체제이다. 메르켈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관계에 대해 ‘민주주의의 전제는 자유’라는 통상의 설명 대신 ‘자유의 전제가 민주주의’라고 낯설게 표현했다.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민주주의에 요구하는 것만큼 우리 역시 민주주의를 가꾸고 보호하는 데 공동의 책임과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메르켈은 당대 독일의 정치지도자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옳음을 독점한 국가가 시민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동시에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35년간의 동독에서의 삶을 통해 직접 체험했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은, 절제되지 않은 자유에 의해 공동체의 민주적 질서가 파괴되고 결국 20세기의 집단학살과 절멸적 전쟁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었던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동독에서 체험한 갇힌 삶과 독일의 비극적 역사 사이에서 메르켈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다루는 정치가의 규범과 책임에 대해 평균적인 당대 독일의 정치인들보다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메르켈이 좋아했던 ‘뵈켄푀르데의 격언’(Böckenförde-Diktum)2)-“자유주의적 세속 국가는 스스로를 보장할 수 없는 전제 조건들로 유지된다. 이는 자유를 위해 감수해야 할 대담한 모험이다”-은 자유와 민주주의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가의 공적 윤리와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추구하는 가치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독일에서든 한국에서든 정치를 소명으로 삼는 정당과 정치가라면, 어떤 경우라도 공동체의 민주적 질서에 대한 책임을 나눠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누군가는 독일정치, 특히 보수적인 기민당이나 메르켈에 대해 비판적이고 불편한 시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회고록이 말하는 바, 정치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이라는 공동의 기반위에 서 있을 때, 민주주의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진보와 보수 어떤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그 정치적 전제는 민주주의이며, 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에 우리는 같은 책임을 나누어 갖고 있다.
메르켈과는 다른 나라, 다른 진영에 속했지만, 임기를 같이하며 함께 일했던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메르켈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재임하는 동안 진정성과 헌신으로 독일과 유럽을 수많은 위기 속에서 이끌었다. 그녀는 지혜로운 현실주의와 흔들림 없는 도덕적 나침판을 가지고 어려운 결정을 내렸으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3)
당대의 정치가가 동료 정치가에 대해 쉽게 할 수 있는 평가는 아니지만, 나라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도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기반 위에 서 있는 정치가에겐 ‘현실과 윤리적 나침반’이라는 같은 무게의 책임과 규범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끝>
1) 한병철, 시간의 향기: 머뭇거림의 예술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Duft der Zeit: Ein philosophischer Essay zur Kunst des Verweilens), Bielefeld 2015.
2)원문은 “Der freiheitliche, säkularisierte Staat lebt von Voraussetzungen, die er selbst nicht garantieren kann. Das ist das große Wagnis, das er, um der Freiheit willen, eingegangen ist.” 자유, p.364
3)오바마 전 대통령 말이다. https://x.com/BarackObama/status/1468955080082690056
회고록의 제목인 ‘자유’ 곧, 독일어 ‘Freiheit’는 어원학적으로 고대 인도유럽어 ‘pri’(프리)에서 온 말이다. pri(프리)는 사랑하다는 의미로 ‘자유’(Freiheit)와 마찬가지로 ‘친구’(Freund)와 ‘평화’(Frieden)와도 연결되어 있다. 고대 인도유럽어 pri가 자유의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은 인상적인데, pri는 사랑하다는 뜻에서 점차 ‘가족, 친구, 부족 등 사랑하는 사람들 속해서 평화롭게 지내는 것’으로 의미가 발전했다고 한다.1) 즉, 자유는 공동체를 전제로 형성된 개념이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안전과 안정, 그리고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700페이지가 넘는 회고록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자유에는 민주주의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없이는 자유도 법치도 인권도 없다. 자유 속에 살고 싶다면 안으로든 밖으로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로부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혼자만의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자유란 우리 모두의 것이다.”(자유 p.739.)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 정의, 연대 등을 중요한 가치를 담는 그릇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는 하나의 정치공동체를 통치하는 실체적 원리이자 체제이다. 메르켈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관계에 대해 ‘민주주의의 전제는 자유’라는 통상의 설명 대신 ‘자유의 전제가 민주주의’라고 낯설게 표현했다.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 민주주의에 요구하는 것만큼 우리 역시 민주주의를 가꾸고 보호하는 데 공동의 책임과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생각한다.
메르켈은 당대 독일의 정치지도자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옳음을 독점한 국가가 시민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동시에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35년간의 동독에서의 삶을 통해 직접 체험했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은, 절제되지 않은 자유에 의해 공동체의 민주적 질서가 파괴되고 결국 20세기의 집단학살과 절멸적 전쟁 속으로 사람들을 몰아넣었던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동독에서 체험한 갇힌 삶과 독일의 비극적 역사 사이에서 메르켈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다루는 정치가의 규범과 책임에 대해 평균적인 당대 독일의 정치인들보다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메르켈이 좋아했던 ‘뵈켄푀르데의 격언’(Böckenförde-Diktum)2)-“자유주의적 세속 국가는 스스로를 보장할 수 없는 전제 조건들로 유지된다. 이는 자유를 위해 감수해야 할 대담한 모험이다”-은 자유와 민주주의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끄는 정치가의 공적 윤리와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추구하는 가치가 보수이든 진보이든, 독일에서든 한국에서든 정치를 소명으로 삼는 정당과 정치가라면, 어떤 경우라도 공동체의 민주적 질서에 대한 책임을 나눠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누군가는 독일정치, 특히 보수적인 기민당이나 메르켈에 대해 비판적이고 불편한 시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회고록이 말하는 바, 정치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이라는 공동의 기반위에 서 있을 때, 민주주의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진보와 보수 어떤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그 정치적 전제는 민주주의이며, 이를 지키고 보호하는 것에 우리는 같은 책임을 나누어 갖고 있다.
메르켈과는 다른 나라, 다른 진영에 속했지만, 임기를 같이하며 함께 일했던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메르켈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재임하는 동안 진정성과 헌신으로 독일과 유럽을 수많은 위기 속에서 이끌었다. 그녀는 지혜로운 현실주의와 흔들림 없는 도덕적 나침판을 가지고 어려운 결정을 내렸으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3)
당대의 정치가가 동료 정치가에 대해 쉽게 할 수 있는 평가는 아니지만, 나라가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도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기반 위에 서 있는 정치가에겐 ‘현실과 윤리적 나침반’이라는 같은 무게의 책임과 규범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끝>
1) 한병철, 시간의 향기: 머뭇거림의 예술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Duft der Zeit: Ein philosophischer Essay zur Kunst des Verweilens), Bielefeld 2015.
2)원문은 “Der freiheitliche, säkularisierte Staat lebt von Voraussetzungen, die er selbst nicht garantieren kann. Das ist das große Wagnis, das er, um der Freiheit willen, eingegangen ist.” 자유, p.364
3)오바마 전 대통령 말이다. https://x.com/BarackObama/status/1468955080082690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