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회고록 <자유> ⑪ 메르켈과 중도 정치 ⓵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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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과 중도 정치 ⓵

메르켈 시대의 기민당을 특징짓는 것은 ‘중도’(Die Mitte)이다. 독일정치에서 ‘중도’는 새삼스러운 개념이 아니다. 중도는 1945년 기민당의 창당 시부터 콘라트 아데나워에 의해 강조되었다. 아데나워는 기민당을 권위주의적 보수와 사회주의라는 양극단을 배제한 중도의 정당으로 위치 지웠다. 아데나워의 중도는 정당 스펙트럼상의 가운데라는 의미였다. 사민당 역시 ‘중도’를 중요한 정치적 가치로 제시한다. 1969년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며 이 연합을 ‘새로운 중도(Neue Mitte)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서의 중도는 노동운동과 자유주의 간의 역사적 화해를 상징했다. 1) 그 이후에도 기민당과 사민당은 서로 경쟁적으로 ’중도‘의 정치를 주장했지만, 역설적으로 서로를 배제해 왔다.2)  따라서 독일 정치에서 중도는 어떤 고정된 실체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고 개념적으로도 모호하다. 정당의 정치적 필요나 당대의 정치적 맥락에 따라 중도의 함의는 늘 변해왔다. 정치적 중도는 특정한 사회경제적 기초나 이념을 갖는 정해진 위치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해석의 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3)


메르켈은 2005년 집권 당시의 정치 현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지난 7년 동안 마치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을 것처럼 정말 극단적으로 대치했고 지난 선거전(2005년 연방총선)에서도 서로 무수한 비방을 퍼부었다.”4)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 정치에 대한 인상과 사뭇 다르다. 


2005년 11월 험난한 선거전에서 승리한 직후, 메르켈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적이 없는 정치가 가능할까?, 그런 정치가 기쁨을 줄 수 있을까?”. 메르켈은 스스로 “그렇다”고 깊은 확신으로 대답한다. 그것은 마치 책임윤리에 입각해서 행동하는 정치가가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는 “나는 달리 어찌할 수 없다. 내 자리는 여기다”(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5)라고 말하는 신앙고백처럼 들린다. 


메르켈이 정치에 첫발을 내딛으며 꿈꿨던 것은 “다양한 정당이 참여하는 정치”였고 참여는 통합의 전제였다. 그녀는 사민당, 녹색당 등 다른당 사람들과 정책적 논쟁을 좋아했다. 물러설 수 없는 갈등 속에서도 타협을 통해 얻는 장점이 단점보다 조금이라도 많다면 어렵더라도 타협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거나 100% 옳다는 것에 대해 늘 회의적이었고 경쟁정당의 정치인에 대해 “아침부터 밤까지 인신공격하고, 인간 별종 취급하는 일”은 생래적으로 받아드릴 수 없었다. 6)


2013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축하 행사 자리에서 기쁨에 들떠 독일 국기를 흔들던 헤르만 그뢰에(Hermann Gröhe) 사무총장의 손에서 국기를 빼앗아 단상에 내려놓게 한 일은 메르켈의 정치관을 보여주는 잘 알려진 일화이다. 메르켈은 “기뻐할 이유는 충분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승리의 순간에도 우리가 독일 국기를 독점할 권리는 없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7)


메르켈이 통치한 16년 중 12년이 대연정이었다. 독일은 1966년 단 한차례, 대연정이 있었을 뿐이다. 대연정이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잦은 빈도로 이뤄질 것이라고는 전후 독일연방공화국을 정초한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기민당이 가장 선호하는 연정 파트너는 자민당이다. 기민/기사당 사람들은 같은 보수진영 정당인 자민당과의 연정을 “꿈의 연정”(Traumkoalition)이라고 부른다. 대연정은 정부구성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메르켈과 기민당에게 강요된 측면이 크다. 대치하는 두 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사이의 연정이 무척 갈등적이고 무기력할 수도 있지만, 메르켈은 오히려 대연정을 자신이 하고자 했던 정치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만들었다. 


우선, 메르켈은 그동안 기민당이 다루지 못하거나 주변부로 밀어두었던 의제, 기민당이 정치적으로 껄끄러워하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정치의 중심으로 불러옴으로써 역설적으로 독일 정치 내의 공동 분모를 확대했다. 성평등이나 여성 인권, 성소수자 문제, 보육과 가족(복지)정책, 노동, 기후위기 대응과 탈원전 문제, 난민․이주민 문제 등이었다. 기존 기민당의 주류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사민당이나 녹색당의 일로 치부했을 정치 과제들이 기민당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중심적인 의제로 부상한 것이다. 


여기에는 기독(Christlich)이라는 당명이 말해주듯, 기민-기사연합의 원초적 기초인 기독교적 세계관에 중대한 수정을 가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결혼 이외의 동반자 관계를 가족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가족 개념’의 도입한 것이나, 동성 공동체를 가족에 포함시키고 나아가 동성혼 합법화8)를 실현한 것은 기민-기사연합으로서는 혁명적이라 할 만한 변화였다. 탈원전 합의를 이끌어 낸 것도 놀라운 변화이다. 무엇보다 이 합의가 사민당과의 대연정 기간이 아닌, 원전 수명 연장에 강한 지지 입장이었던 자민당과의 연정기간(2011년)에 이루어진 것도 인상적이다. 


최저임금제 같은 노동권 보호 장치가 사민당 총리가 아닌 기민당 총리 시기에 입법화된 것도, 또 독일정치에서 사민당이 주도권을 행사해왔던 복지분야에서 부모수당도입과 아빠육아휴직제도, 보육시설에 대한 법적 권리를 입법화해 가족정책 분야에서 사민당보다 더 높은 지지를 얻게 된 것도 이례적 장면이었다. “(메르켈의)기민당이 사민당보다 더 사회적”(CDU ist sozialer als die SPD)이라는 언론과 분석가들의 평가가 과장은 아니었다. 


메르켈이 집권기간 다뤘던 의제들 중 많은 것이 메르켈 이전이라면 기민당의 총리에게 기대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메르켈은 이를 적극적으로 다룸으로써 기민당이 이룰 수 있는 것의 한계를 확장하고 정치적 의제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메르켈은 기존에 형성된 중도라는 관념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자신이 정치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방향과 우선순위로 중도 정치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재정의함으로서 정치의 중심을 자신에게 옮겨 놓았다. 메르켈의 중도정치의 특별함은 4번의 선거를 모두 이긴 정치전략상의 탁월함이나 권력정치적 유용함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이견들 사이의 토론, 갈등, 논쟁을 통해 한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잠정적 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메르켈의 재정의한 중도 정치는 대립하는 가치들 사이에서도 타협이 가능하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도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 정치문화에 대해 ‘통치하는 정당들(기민-기사연합, 사민당, 자민당, 녹색당) 사이의 협력과 균형, 그리고 다원적이면서 수렴적 경쟁’을 연상한다. 이런 인상은 어느 정도는 메르켈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1) 헬가 그레빙, 󰡔독일노동운동사󰡕 pp. 225-232, 빌리 브란트의 이런 생각은 자민당과의 연정을 위해 ‘고안된’ 것은 아니다. 브란트는 노르웨이 망명 시절인 1939년 “사회주의가 그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기에 진정으로 정당한 정책을 펼치려면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1959년 포괄정당의 지향을 분명히 한 바트 고데스베르크 강령의 정신과 일치한다. 그레고어 쇨겐, 󰡔빌리 브란트󰡕, pp. 77-78. 

2) 중도 정치 집착에 대한 비판 역시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Maurice Duverger)의 중도에 대한 비판이 있다. 뒤베르제는 정당정치의 이원적 대립 경향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정당 스펙트럼 상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은 존재할 수 있으나 중도적 방향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중도란 좌우파 정당의 온건파들이 모이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이 역시 그 자체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노선으로 정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3) Sigmar Gabriel neuer Bundesvorsitzender - Gemeinsam für den Aufbruch SPD-Ortsverein Bad Krozingen-Hartheim am 16. November 2009

4) 󰡔자유󰡕. p. 348. 

5)종교개혁을 불러온 95개조 반박문을 철회하라는 교황의 요구를 거부하며 마르틴 루터가 한 말이다. 

 6)󰡔자유󰡕. p. 299.

 7)󰡔자유󰡕, p. 691.

8)메르켈은 공식적으로는 이 법안에 반대입장을 유지했지만, 동성혼 합법화 법안에 대해 당 의원들의 양심에 따른 자유 투표(freie Abstimmung)를 허용했다. 구속적 당론 투표의 부담에서 벗어나자, 법안 처리는 급물살을 탓다. 마침내 2017년 6월 30일 연방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독일은 유럽에서 14번째로 동성혼이 합법화했다. 이것은 메르켈이 사실상 동성혼 표결의 길을 연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당대표이자 총리로서 반대표를 던진 것은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좌우로부터 제기되었다. 회고록에서 메르켈은 당대표라는 현실적인 이유로 양심에 반해 반대표를 던진 것을 괴로워했다.󰡔자유󰡕, p. 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