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회고록 <자유>⓸ 메르켈의 시대 - 모호함, 유연성, 계산된 무미건조함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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⓸ 메르켈의 시대 - 모호함, 유연성, 계산된 무미건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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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메르켈의 데몬


메르켈은 자신의 놀라운 성취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회고록 어느 구석에서도 메르켈 스스로 자신의 업적이나 성과를 포장하거나 선전하는데 욕망의 이빨을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하기에 회고록은 다소 밋밋하다. 메르켈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아주 전형적인 방법은 자신의 부상에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도 운이 좋았고, 내 능력과 재주를 발휘하도록 지원해준 부모를 만난 것도 운이 좋았으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항상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준 가족과 친구, 동료들을 만난 것도 운이 좋았다.”(자유, p347)


메르켈이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다만 겸손의 표현만은 아니다.메르켈의 정치적 삶이 특별해지는데 어느 정도의 행운이 있었고, 정치적 삶의 고비마다 행운의 여신이 미소지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메르켈이 누린 행운은 어쩌면 당대의 동독 주민 나아가 독일 정치인 대부분에게 공평하게 제공된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행운을 대면하는 방식 아닐까. 그녀가 말한 ‘운’은 단순한 행운의 여신이 아니라, 기회를 포착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의지의 발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메타포는 바로 메르켈이 간직했던 하나의 조각상이다.


2019년 메르켈이 총리로서 마지막 임기를 보내고 있을 때, 한 전시회에서 첫 눈에 마음을 끈 한 조각상을 발견하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서 구입했다. 조각가는 메르켈에게 왜 그 작품에 이끌렸는지 물었다. 메르켈은 자신은 언제나 적절한 타이밍을 찾기 위해 무수히 고민해왔다며 “정치인은 올바른 순간에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게 성공과 실패를 가르거든요”라고 대답했다. 그 조각상은 다름 아닌 카이로스(Kairos) 였다. 1)

1) <자유> pp. 681-682. 


희랍어에는 크로노스(C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는 시간을 의미하는 두가지 단어이자 데몬이 있다. 시간을 말한다는 점에서 두 단어의 공통점은 있지만,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객관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주관적 개념의 시간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에는 그 시간을 활용하고 장악하는 주체의 의지, 판단, 결단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서 묘사되는 카이로스는 한 손에는 저울,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균형있는 판단과 함께 결단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크로노스가 반복되는 일상의 정치를 표현한다면, 카이로스는 돌연 나타나는 위기의 순간, 결단이 요구되는 시간에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기꺼이 해내는 정치가의 실천적 능력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의지를 세운 사람, 적절한 변화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절제와 인내에서 우러나오는 균형잡힌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조우할 수 있는 ‘별의 순간’이기도 하다. 카이로스야 말로 메르켈이 내면에 간직했던 그녀만의 데몬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그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2), 메르켈이 말한 바, “적절한 순간을 직관적으로 감지해 내는 능력”은 아무나 허용된 것은 아니다. 정치가인 메르켈이 추구한 의지는 권력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권력 자체가 그녀의 목적이었다면 오늘의 메르켈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정적들이 그녀에게 덧씌우고자 했던 ‘배신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독 시절, 슈타지에 협력해 직업적 성공을 보장받는 길을 메르켈은 선택하지 않았다. 콜의 후광을 받아 성장한 정치인으로서 콜의 문제에 대해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권력으로 가는 더 현실적인 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선택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한 자유는 이웃과 공동체, 우리 사회에 대한 책임 속에서 나타난다”3)고 생각했다. 그녀의 의지는 권력 그 자체가 아니라, 더 좋은 공동체라는 목적있는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런 정치 윤리가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그녀의 정치적 선택과 도전은 정당화될 수 있었고 그녀의 언어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메르켈은 권력의 시계 속에서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정치가의 윤리에 기초해 카이로스의 순간을 대면했다. 그랬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통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 <자유> p. 682.

3) <자유> p. 739.


4. 위기의 시대


정치는 ‘하루가 어떻게 끝날지 아침에는 알 수 없는 일’(베아테 바우만)이라고 한다. 아무리 잘 짜여진 체계와 계획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와 문제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정치의 세계이다. 통상의 민주국가에서라면 16년이라는 긴 집권기간을 갖는 것은 매우 드물다. 독일을 기준으로 봐도 메르켈 총리의 집권기간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헬무트 콜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길다.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통치자로서 메르켈은 네차례의 연이은 총선에서 거듭해서 시민의 신임을 받았고,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석가들은 메르켈의 특징은 ‘어느 정도의 모호함, 유연성, 계산된 무미건조함’(a certain ambiguity, flexibility and calculated blandness)이고, 이런 조심스러움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평가한다.4) 이런 평가는 회고록에 종종 표현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인내하고 절제하는 그의 기질과 부합하는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분석가들의 이런 지적은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인 의미를 더 많이 담고 있다. 집권 기간 정치 이슈에 대한 메르켈의 모호한 태도는 종종 비난 또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을 동사화해 만성적인 우유부단과 어떤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merkeln’(메르켈하다)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5) 

4) The Guardian view on Angela Merkel” 《The Guardian》 2021. 9. 19.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1/sep/19/the-guardian-view-on-angela-merkel-farewell-to-a-bulwark-of-stability

5) Neologismenwörterbuch; https://www.owid.de/, 《네이버 사전》 https://dict.naver.com


그렇다고 메르켈의 집권 기간이 우유부단하게 일해도 될 만큼 평온했던 것은 아니다. 또 통치자의 침묵이 용인될 만큼 여러 가지 호조건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도 더더욱 아니다. 메르켈 총리 시대는 '위기의 시대'로 종종 묘사된다. 메르켈 집권기에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뒤이은 2010-2011년 유로존 경제위기,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기후 위기의 전면화, 2015년 대규모 중동 난민 유입에 따른 유로존 난민 위기, 2014-2015년 우크라이나 분쟁, 2016년 브렉시트, 2017년 트럼프의 등장 및 극우 포퓰리즘의 확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 세계적 또는 유럽적 범위에서 중대한 위기가 연거푸 몰아닥쳤다. 6)

 6) “A First Look at Angela Merkel`s Legacy: The Era of Missed Opportunities” 《SPIEGEL》 2021. 9. 6.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a-first-look-at-angela-merkel-s-legacy-the-era-of-missed-opportunities-a-3cdef2e3-e451-4e6b-91b5-c89f97acb9df


위에 열거된 위기들은 모두 글로벌-유로존-독일을 가로지르고 매우 넓은 범위의 문제이고, 정치, 경제, 안보,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이 연관되어 동시에 발생한 복합적 성격을 가진다. 위기는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일국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복합 위기들을 한 정권이 연속적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독일은 경제 및 재정적으로 유로존의 ‘보증국가’(Schutzmacht Staat)’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유로존의 재정적 안정성과 경제 질서 유지의 핵심적 역할이 독일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말이다. 독일이 이런 문제에 대해 섣부르게 대처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이는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로존, 나아가 글로벌 차원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7)

7) Paul Lever, 이영래 역,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pp. 316-323. 


국내 정치의 조건 역시 메르켈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메르켈이 통치의 장으로 나섰을 무렵 독일 정치는 테스트스테론 넘치는 남자들의 검투장에 가까웠다. 헬무트 콜, 볼프강 쇼이블레, 프리드리히 메르츠 같은 기민당의 리더들과 자매당의 에트문트 슈토이버(Edmund Stoiber)와 그 뒤를 이은 호르스트 제호퍼(Horst Seehofer), 사민당의 슈뢰더와 프란츠 뮌터페링(Franz Müntefering) 등은 모두 실력자들이었지만 면면이 저돌적이며 강한 정치를 추구하는 권력 정치가들이었다. 메르켈은 어떻게든 이들과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위기에 대처하는 독일정치의 컨센서스를 만들어가야 했다. 


너무 일찍 논쟁에 개입해 정치적 숙의의 시간을 훼손하거나 이데올로기와 현실정치를 구분하지 못해 갈등을 손쉽게 추상화했을 때 따라오게 될 위험은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많은 분석가들이 메르켈의 단점으로 지적한 그녀의 ‘과도한 신중함, 모호함, 조심스러움’은 직면한 문제의 성격과 독일 통치자에게 부여된 막중한 책임, 독일정치의 경쟁환경을 볼 때,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5. 메르켈 시대의 전제 : 독일의 공동 통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은 시민의 정치적 의지에 비례해 다수의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고, 그들의 과반이 정부를 구성한다. 일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이론상은 가능하지만, 독일의 경우(통일이전에는 서독), 종전 이후 1949년 이래로 단 한번도 한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지 못했다. 독일은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연합정치가 강제되는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8)

8)  조성복,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pp. 141-147.


그러나 제도가 연합정치를 강제하는 것과 그렇게 수립된 연합정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정부운영은 제도만으로 자연스럽게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합이라는 정부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들의 특별한 윤리나 규범이 더 중요하다. 독일식 제도를 오늘 파편화된 한국 정치에 적용했을 때, 그 결과가 독일과 같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제도 못지않게 정치를 구성하는 원리, 정치윤리나 문화 같은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합정치는 타협의 원리를 내면화한 이후에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타협하고 연합한다는 것은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자신이 의도했던 계획이나 욕구의 상당부분을 실현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불만족, 불충분을 감수하고 자신의 의지 이외의 것을 위해 여지를 남겨두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합정치는 공동의 책임성, 상호존중과 상호절제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누가 어떻게 오늘날의 독일을 지배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텍스트가 회고록에 담겨 있다. 메르켈이 회고록을 쓰기로 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총리가 되어 주기적으로 반복했던 루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메르켈은 총리이자, 당대표, 연방의원으로서 반복적으로 해야 했던 약 80여 개의 루틴을 A부터 Z까지 알파벳 순으로 정리했다. 여기에는 정당이나 관료, EU 비롯한 유로존 및 글로벌 차원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정치단체 들과의 긴밀한 대화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 외에도 노동조합, 경제단체,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 언론, 환경이나 인권 같은 사회단체, 스포츠․문화단체, 시민활동가 모임 등 독일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결사체와 기관 등과의 회의, 협상이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다. 총리가 누구와 만나 무엇을 논의하고 협상하는지는 독일이 어떻게 통치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메르켈은 자신의 루틴을 정리하며 이렇게 강조한다. 9)

9) 메르켈의 루틴에 대해서는 <자유> pp. 362-374.


“이 루틴은 우리 연방국가 내에서 여러 정치기관의 협력 작업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국정운영도 이 루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에서 다양한 책임을 맡고 있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인들을 늘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이 루틴은 내게 무척 중요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여기서 나온다고 믿었다. 또한 이 루틴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공동선을 위한 책임이 정치를 넘어 많은 조직에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자유> p. 364 ※강조는 필자)


한 국가 공동체가 지향하는 공동선이라는 목적을 정치는 물론, 시민사회(시민결사체)가 공유하고, 이를 위해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하나의 통치체제를 형성하고 운영한다는 통찰은 인상적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모든 것을 다 갖고, 패배한 정당과 그 지지자들은 통치에서 배재되어 어쩔 수 없이 잠재적으로 반체제 세력으로 만드는 통치방식과 권한과 책임을 서로 나눠 상호 협력을 촉진하는 독일의 정부운영 모습은 크게 대비된다.


예를 들면, 목록에 ‘메제베르거 대담(Meseberger Gespräch)’이라는 항목이 있다. 대담이 열리는 메제베르크성은 브란덴부르크에 위치한 연방정부의 영빈관이자 총리의 휴양지이다. 넓은 호수와 수려한 경관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채는 정상회담이나 국제적 조약체결 같은 국가수반들의 중요한 외교의 장이기도 해서 “유럽 정상들이 산책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마을”로 불리기도 한다.10) 이런 유명한 메제베르크성은 독일의 민주적 통치를 위해서도 중요한 정치적 공간이다. 매년(주로 여름), 메제베르크성에서는 연정을 구성하는 내각, 정당이 중요한 통치 의제와 계획을 토론하고 협상하는 비공개 회담(Klausurtagung)을 진행하는데 여기에 노동조합과 경제단체의 지도부가 참석한다. 노동조합과 경제단체는 단지 노사문제에 한정된 기관이 아니라 정부 운영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에 참여하는 통치의 주체로서 대우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공동선을 위한 책임과 권한이 총리와 그를 돕는 일부 전문관료들의 수중에 있지 않고, 정당들과 정치단체들은 물론, 노조, 기업단체 등 한 사회의 생산자 집단도 실질적으로 나누어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10) “In Meseberg, Germany, Europe is plotting its future” 《뉴욕타임즈》 2012년 3월 15일. 


우리나라에서라면 노동조합은 국가와 기업의 관리와 통제를 받는 피지배자로 취급한다. 그러나 독일의 노동조합은 독일을 끌어가는 중요한 통치 주체로 인식된다. 노조, 대기업집단만이 아니다. 여성, 청년, 중소기업(mittelstand) 등 다양한 시민들이 자율적 결사체를 통해 통치에 관여한다. 이렇게 정치와 사회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당, 기업, 노조를 위시한 다양한 시민 결사체로 이루어진 수많은 공동통치체계(Condominium)로 짜여져 있다.


독일은 공동체의 책임성을 나눠 가진 다원적 주체가 함께 통치하는 나라이다. 독일은 '박근혜 정권이나 문재인 정권' 같이 당선자 개인으로 대표되고 그의 친위세력이 모든 것을 다 갖는 정치가 아니라 책임을 나눠 갖는 정당과 결사체들의 "공동 통치의 그물망"으로 짜여진 체제이다. 메르켈에게 통합이란 “모든 시민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했고, 정치란 이를 통해 “평범한 시민의 일상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민주주의는 강요가 아니라 공동의 인식과 참여를 통해서만이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다. 메르켈에게 이러한 메카니즘을 ‘자유’의 전제였다. 그리고 총리로서, 당의 대표로서, 그리고 연방의원이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독일의 이런 질서와 전통을 지키는데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