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회고록 <자유> ⑥ 메르켈의 유산과 우크라이나 전쟁(2)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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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메르켈의 유산과 우크라이나 전쟁(2)

 

메르켈의 고민은 깊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정작 이 문제의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정치적 혼란 상태를 오랫동안 지속해왔다. 대통령 탄핵과 연이은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됐다. 시민으로부터 유리된 정치는 친서방과 친러시아로 편을 갈라 적대적으로 나라를 양분했다. 사실상의 내전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NATO 가입을 지지하는 국민은 다수가 아니었다. 정치권 스스로 문제를 풀기 위한 합의된 대안을 마련할 수도, 또 대안을 마련한다해도 제안할 수도 없는 심각한 국론분열이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우크라이나는 국가로서의 통합성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있었다. 어떤 측면에서건 우크라이나를 매개로 러시아와 유럽이 직접 대치하는 것은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을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메르켈이 말했듯, 정치와 외교가 실패한 결과는 전쟁이다. 메르켈은 분쟁의 군사적 해결, 즉 러시아군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는 환상이라고 생각했고, 우크라이나 측에 공개적으로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전달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분쟁을 일삼는 러시아는 위험한 존재였지만, 그렇다고 강대국 러시아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국과 중․동부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메르켈에 대한 불만과 비난이 쏟아졌다. 미국 상원에서는 독일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중․동부 유럽 나라들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터무니없는 공포에 굴복한 것’(젤렌스키), ‘NATO 문제에 대해 러시아에 거부권을 주는 행위’(중동부 유럽국가들) 등의 비난이 메르켈을 향했다. 반면 이런 압박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은 “우리가 몇 날 며칠을 여기 앉아 회의한다고 해도 NATO 가입에 대한 내 기본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나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MAP 지위 부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며 단호하게 버텼다.

 

회고록에는 노르망디 형식1)의 구상에서부터, 민스크 협정을 통해 잠정적 휴전에 이르는 길고도 험난했던 협상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메르켈은 외교를 위해 한 주 동안 약 2만km를 여행하기도 했다. 협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푸틴, 오바마와 세계 어떤 정상보다도 오래, 자주 통화해야만 했다. 전화 통화를 잘 하는 것이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보여주었다. 워싱턴과 뮌헨, 파리와 키이우, 민스크와 모스크바를 오가며 오바마(부시)와 푸틴, 유럽과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분주하게 이루어진 메르켈의 외교적 노력은 읽는 사람마저 숨차게 만든다. 메르켈이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기로 했을 때부터 고난은 예정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가치와 이익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끊임없는 노력, 그 자체가 현실정치(Realpolitik)2)이다. 메르켈에게 그것은 더러운 일이 아니라, ‘협상으로 폭력을 종식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이었다.

1) 노르망디 형식(佛 Format Normandie, 獨 Normandie-Format)은 메르켈이 제안한 회담 형식이다. 201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7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분쟁의 실질적 당사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 간의 만남을 독일과 프랑스가 주선해 러시아,우크라이나가 대면하는 4자회담을 개최한다. 이후 4자회담 방식으로 2014년~2022년까지 우크라이나 분쟁을 조정하는 실질적 협상을 진행했다. <자유>, pp. 502-506.

2) Realpolitik은 19세기 독일 정치사상가인 루드비히 폰 로하우(Ludwig von Rochau)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오늘날 "현실정치(Realpolitik)"라는 용어는 흔히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레엘폴리틱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존 뷰(John Bew)는 레알폴리틱이라는 개념은 19세기 유럽 전역에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충돌하면서 형성된 현대 국가들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정치 방법론으로 제시했다고 말한다. 뷰는 레알폴리틱의 본래 의미가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이상과 부상하는 민족주의 물결을 조화시켜야 하는 도전에 직면한 국제주의자들에게 더 유용하다고 본다. 존 아이켄베리(G. John Ikenberry, “Review<Realpolitik: A History>” 《foreignaffairs》, 2017. 5~6월.

https://www.foreignaffairs.com/reviews/capsule-review/2017-04-14/realpolitik-history


메르켈은 임기 말까지 민스크 협정의 결과가 이행되도록 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푸틴은 불만에 차 있었지만,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막고 협상을 모색한 메르켈의 노력만큼은 인정했다. 그러나 푸틴은 “당신이 총리를 천년만년 할 수는 없어요. 당신이 내려오면 두 나라는 NATO 회원국이 될 겁니다. 나는 그걸 막을 거고요”라며, 메르켈 없는 민스크 협정의 미래에 대해 강한 회의감을 내보였다. 

 

푸틴의 예언처럼 메르켈이 퇴임한 얼마 뒤인 2022년 2월, 러시아는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희생됐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극이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민스크2 협정에 따른 휴전 당시 러시아에 점령된 돈바스 일부(자치독립공화국 형태)와 크림반도(합병)의 2배가 넘는 지역을 전쟁을 통해 잃었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자결이라는 명시적인 바람과 전혀 상반된 결과 속으로 빨려들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침공에 대해 메르켈의 양보정책의 결과라며 분노했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메르켈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러시아의 야만과 전쟁을 규탄하고 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에 지지를 표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2008년 이래 추구해 왔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 역시 분명히 했다.3) 

3) <자유>. pp. 471-489.

 

지금은 독일의 진보정당(사민당과 녹색당)마저 독일의 무장 확장을 위해 예산을 더 써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유럽 전체가 GDP의 3%가 넘는 국방비 지출을 확보하고, 무장을 확충하기 위해 홍역을 앓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예민한 중부유럽의 국가로서 독일의 위상과 역할은 유럽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 전후 유럽 평화를 보장하는 데 기여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4)이래 ‘접촉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 또는 ‘무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5)라고 불리는 현대 독일의 외교 전통과 교리가 앞으로도 유효할지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쩌면, 메르켈은 빌리 브란트, 헬무트 콜이 만들어온 외교 교리의 마지막 계승자가 될 수도 있다. 

4)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후 최초의 사회민주당(SPD) 소속 총리(1969년~1974년)이다. 초대 서독총리인 아데나워의 할스타인 정책을 폐기하고 동구권 국가들과의 화해와 교류를 추구하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입안하고 추진했다.

5) ‘접촉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erung) 또는 ‘무역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Handel)는 1963년, 빌리 브란트의 참모 에곤 바르(Egon Bahr)가 독일 투칭(Tutzing)에서 제시한 “동방정책( Ostpolitik)”의 핵심 원칙으로, 동방정책은 당시 소련 등 동구권과의 평화 및 공존, 경제적 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동구권의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추구해 나간다는 방법론에 기반한다. 이 개념은 독일 외교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교리이자 전통이다.

 

2기 트럼프 등장 이후 기존의 국제정치 질서는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유럽도 전환점에 섰다. 회고록이 분명히 말하는 바는 메르켈은 여전히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옹호자이며 현실정치가(Realpolitiker)라는 것이다. 그녀의 수단은 정치와 외교이다. 최근 강조되는 유럽의 무장강화는 현실적으로 독일의 무장강화를 의미한다. 과거 유럽에서 독일의 무장이 강화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지만, 미래 유럽에서는 어떨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메크켈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상황의 전개인 것은 분명하다.